김기덕 황금사장상 수상이 던지는 메시지 생각들을 보다


[사설]김기덕 황금사자상 수상이 던지는 메시지


김기덕 감독의 18번째 영화 <피에타>가 어제 새벽(한국시간) 열린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계의 쾌거이자 김 감독 개인으로서도 크나큰 영예가 아닐 수 없다.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베를린국제영화제 특별은곰상을 받은 이래 한국영화는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주목을 받아오긴 했으나 위 두 영화제와 칸국제영화제 등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평단의 논란과 흥행 부진에 시달리던 ‘충무로의 이단아’ 김 감독이 국제무대에서 크게 인정받은 이번 수상은 우리 사회와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초등학교 졸업에 연출부 경험도 없이 32살에 처음 영화를 보고 감독의 길로 들어선 그의 영화 인생은 그 자체가 영화 같기도 하다. 스스로의 표현처럼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자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인간의 본능을 날것 그대로 까발리는 그의 영화 또한 평단과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이번 수상작 <피에타>도 악마 같은 남자와 어느 날 엄마라고 찾아온 여자를 통해 극단적 자본주의 세계의 황폐함과 그 안에서 인간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물은 작품이다. 국내 현실과 타협하거나 영합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저예산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점도 김 감독의 영화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영화는 10억원 이하의 제작비로 단기간에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피에타>도 한 달 동안 12회차 촬영을 거쳐 완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저예산 독립영화 내지 비상업적 예술영화가 처한 국내 환경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제작비 마련과 개봉관 확보는 물론 객석 채우기조차 쉽지 않은 게 여전한 현실이다. 김 감독이 한때 “앞으로 내 영화를 국내에 개봉하지 않겠다”고까지 말했을 정도다.






최근 한국영화가 중흥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도둑들>이 사상 6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해 역대 최고 흥행작이었던 <괴물>을 뛰어넘을지 주목되고 있다. 지난달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70.2%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피에타>의 예술적 성취는 한국영화의 수준을 높이고 영역을 넓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예술영화가 세계의 찬사를 받기 전에 국내에서 먼저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수준 높고 풍부한 문화는 다양성에서 나온다는 걸 알아야 한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웃사람 영화를 보다







이웃사람


뭔가 처연해진기분이 들때는혼자 영화를 보게 된다.

혼자 그 어두운 공간에 폭 쌓이면 그 처연한 기분이어쩐지 차분하고 고요한,안정된 분위기마저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전날 뭔가 기이한 일을 겪고나서 터벅터벅 극장으로 갔다.무슨 영화를 볼지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제목이 있었기 때문에...이웃사람

강풀선생의 만화였다는 사실은영화를 보고 나서 안 것이지만 이웃 사람이라는 그단어가 요즘 만큼 섬뜩하게 다가온 때가
있었나 싶다.

말도 안되는 일련의 범죄들이 우리의 일상에서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일어나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있지 않을까?

굳이 침침하고 음울한 그 포스터를보지않아도 그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운게2012년 너무나 많은사건들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기에 가능한 일일게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게 그런것일지도모르겠다. 우리가바른생활, 즐거운생활에서 바둑이 멍멍,철수와 영희가 학교에 갑니다를 배울 무렵 이웃사람,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참으로 정겹고 따뜻한 단어가아니었나 말이다. 어쩌면지금은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
그 단어가...

표를 끊고 들어간 극장에 사람들이많지 않아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혼자서 친절한 금자씨를 보러 갔을때 그 곳이만원이었고 나는 어렸기에 엔딩자막이 올라가면서허둥지둥 빠져나오던 때를 생각하면 말이다.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마세요!!!’라고속으로 외쳐대면서...

사람없는 극장에서 처연한기분에다 혼자 푹 파묻히니 더할 수 없이 편안해졌다.

영화의 내용에 상관없이 오늘 이 곳에서의 시간은참으로 좋다라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는 뭔가 긴박하다거나아슬아슬하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전체적으로 좀 우울하고슬픈편이었다.

즉, 추격자 스러운 분위기를 기대한다면 글쎄...라는 뜻이다. 살인사건이고재개발을 앞 둔 아파트 사람들을 놓고 벌어지는 이야기라뭔가 차가운 칼날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길게늘어지는 듯한 분위기에 사실 좀 지루한 감도 없지않았다.

뭔가 캐릭터의성격도 분명하게 와닿지 않고 상황에 접속한 그들의단면만이 그저 특징없이 드러나는 정도였다.

이 중에서 가장 범인의 캐릭터가 가장 그나마재미있었던 것 같다. 전형적인사회적약자, 충동조절능력부재. 스스로가 사회적약자임을

감추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감금해놓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렇게만보면 요즘 우리들 누구나가 이럴 수 있기 않을까라는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물론 사회적 열패감이 이들을생산한 것입니다. 시스템의문제입니다라고 말할 만큼 그들의 죄를 가볍게 해주고싶은 마음은 없지만

유사범죄가 빈번한 요즘 이런저런생각을 해봄직하게 하는 캐릭터임에는 틀림없없다.

화해라는 요소,재개발의 문제, 단절이라는요소...현대도시의다양한 문제를 조금씩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는괜찮았다.

단지 조금지루했을 뿐...

생뚱맞을지 모르지만 이러한공간의 문제를 보면서 재개발의 대안으로서 더욱 더마을만들기가 활성화 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해본다. 마을만들기에관심이란 걸 가지고 접근해보려다 좌절한 본인이지만마을만들기만 제대로 되어도 이런 일들이 많이 사라지지않을까 하고 기대해보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나 역시 방범문제때문에 마을만들기에 관심이시작된 거니까...


경비아저씨의 캐릭터가 좀 더부각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을 뒤로하면서-이런캐릭터는 진짜 중심에 가져다 놓으면 악마도 될 수있고 천사도 될 수 있음을 보여줄 것 같았다.-편안한영화관에서 깨어났다. 더불어그 처연한 기분에서도 깨어났다.

Ventilation이란건 이런걸까? 영화도나도 나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성가신 이웃 영화를 보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건들을 보면서 예전에 본 영화가 생각났다.
물론 그 영화를 보게 된 르꼬르뷔제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주택이 등장하기 때문이었지만
보고 나서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미 영화라 제법 색다른 느낌이 있는 건 확실했다.

말 그대로 성가신 이웃이란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웃집에 오지랖 넓은 험상궃은 남자가 이사를 오게 되고
자신의 창을 주장하며 벽을 뚫으면서 서로간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생기면서 벌어지는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뭔가 그 지극히 가능한 이야기를 참 디테일한 심리로써 풀어낸다는게 영화로써 가능한 이유겠지만 말이다.
이웃집 남자는 뭔가 비밀스런 일을 하는 듯한 일종의 킬러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의 이웃에는 상당히 호의적이다.
반면 이 남자와 갈등하는 이웃의 남자는 허풍세고 속물적이고 그러면서 돈은 제법 버는 좀 찌질한 인간이다.
내 집이 훤히 들여다 보여진다는것이 물론 싫지만 덮어놓고 이 남자는 이웃의 킬러스런 남자에게 고압적으로 군다.
킬러스러운 남자는 속물의 기준에서는 한단계 낮은 부류의 인간이니까...어쨌든
살살 신경건드는 그 불편한 무엇때문에 속물남자의 생활은 점차 균형을 잃어간다. 벽 부수는 소리, 그리고 자신이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벽을 부수는 그 행위에서 엄청난 거슬림을 느끼면서 딱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덕에 남자는 서서히 무너져가는 듯하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  속물남자에게 동조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뜨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실은 그랬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웃의 오지랖은 너무나 성가시고 게다가 말도 안되게 서로의 집을 바라보게 된다는 건
더더욱 괴로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킬러스러운 남자의 따뜻한 마음이랄까 위트 역시, 내가 원치 않는 자극을 계속 나에게 가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 폭력이 다른 것이 아니구나... 라면서 분개한 것도 사실이다.
그냥 날 좀 내버려두란 말이오! 좀머씨의 절규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원치않는 자극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수 있을까?...
그걸 견뎌낼 만큼의 여유라는 것이 정말 우리에게 있을까?....
그게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모든것을 놓아버리고 세상에서 붕 떠오르는 기분이 아닐까?...모든것의 감각이 사라지면서
비현실적인 시공으로 들어가서 나도 모르는 내가 그 무엇을 저질러 버리는...
묻지마 사건들이 가슴아픈건 그래서 일 것이다. 원치 않는 자극으로 멍들고 상처받은 상태에서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면 
어느순간 그 모든 감각이 무뎌지는. 그러면서 그 순간은 내가 아닌 또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겠지.

삭막한 세상에 참으로 따뜻하고 평온한 순간을 기대하면서도 그러한 기회들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쫓기고 쫓기면서
살아가는 건 우리들의 비극일 수 밖에 없겠지만 사실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잘 모르겠다...  

1988_한한 책을 보다



1988이라는 소설을 알게 된 건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작년엔가 중국에서 오신 북디자이너이신 류 샤오상 선생과 워크샵을 하고 난 후 책에 관해 질문하다가
중국 소설중에 추천할만한 것이 있을까요? 라고 물어봤더니 바로 1988이라는 대답을 돌려 주셨다.
물론 그 때 다른 참가자들은 내 질문이 좀 이상하다고 갸우뚱거렸지만...(추천하신들 번역안된거면 어쩔거냐라는 투로. )
어쨌건 나는 1988이라는 그 당시 제목이 강렬했고 중국소설이라는 것이 위화,루쉰 정도를 빼면 너무나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꼼꼼하게 기억해 두었다.
그리고는 반년정도 지나 책을 구입했고 또 반년이 흐른 뒤에 책을 읽게 되었다.
1988이라는 제목에서 나의 1988년을 기억하면서,,,

책을 펴기전까지는 뭔가 격동의 중국사에서 희생당한 개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일거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물론 그 격동의 시기는 1988년일 것이고...
그러나,
조금은 달랐다. 그저 개인적인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결코 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그 개인인지라 아주 연하게
그 시대적 배경을 뿌옇게 덧붙여 놓은 정도 였다. 그걸 간과한다면 그저 로드무비 형식의 주절주절 고백해 놓은 소설쯤이다.
살아가면서 전혀 만날일 없는 남녀가 만나서 차를타고 그 어딘가를 간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스슬의 이야기를 한다.
딱히 대화랄 것도 없는 고백들이다. 결론이 다소 진부하고 허무했지만 읽는 동안은 빠져들만한 대사들이 곳곳에서 독자로 하여금
긴 여정을 견디게 하는 요소로 빛을 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는 원동력은 아마 계속 달린다는 그 느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침묵이라는 게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 나나가 이야기하고 나와 나나가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안정감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이야기한다. 시작을 이야기하고 끝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번 살아봐요.인생은 드라마와 같아서 아주 엉성하고 논리도 없어요. 비열하고 지루하기만 하죠.
그렇다고 손을 놓을수도 없어요."
"우리는 스스로 길을 그려나갈 수 없어요. 누가 그려놓은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기만 할 뿐이죠."
"나나, 사실 자신을 깨끗하게 씻는 건 쉬워. 매번 내가 한 일이 불만족스러우면 나는 철저히 장소를 바꿨지. 그곳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거든. 당신도 그러면 돼."

화려하고 현란한 문장보다는 간결하고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날선 느낌의 문장들이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글이다.

1988년에 출시된 스테이션 왜건을 타고 달리는 이 글의 무대는 전혀 상상이 되지않았지만 1988년 대한민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저 호돌이 인형을 놀이동산에서 사온 기억,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기억, 주판을 처음 배웠던 기억, 소방차와 박남정의 기억, 그런그런 기억들이 아득하게 겹쳐지는 시간이었다. 그 때와 지금은 정말로 완전히 달라져있긴 하다. 그러니까 완전히
새로운 대상으로서 그 시간들을 생산,추억하는 것이겠지.

감천 문화마을 도시를 보다



도시를 해석한다는 것이 너무나 궁금하고 흥미로워서 여러 책을 뒤적였지만 역시나 나에게 와닿는 개념은 찾기 어려웠다.
책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그냥 봤을 때 어 이거다! 하게 되는게 진정한 나만의 답이 될 것이다.
이곳 감천 마을을 보았을 때 느낀 점이 그런 것이었다.
읽어보고 싶은 느낌이란 이런거라고...
집들이 옹기종기 너무나 다양하게 그러나 조화롭게 앉아있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마을을 바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저 집들에 대해 궁금해지면서 하나하나의 집들이 자음이 되고 모음이 되는 것이다.

이 마을은 부산에서 많이 낙후되고 노후된 공간이다.
그럼에도 이 마을은 많이 밝아져있다. 나름의 가치를 찾아서 만들고 가꾸어서 마을이 그 나름의 고유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리적인 주거환경은 열악하지만 그 속에서 주민들은 아직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이야기하고 또 마을에 대해 꿈을 꾼다.
재개발에 대한 대안이라거나 사라진 그 무엇에 대한 복원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곳이 이곳 감천마을이 아닐까 싶다.

부산사람들보다 외지 사람들에게 더욱 유명해진 곳. 그래서 두런두런 각 지방의 사투리로 걸어다니는 외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그 눈빛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처음에 감천에 갔을 때 마을주민들의 적개심어린 눈빛과 내 스스로가 느낀 가치관의 혼란을 정리하지 못해 다시는 이 곳에 오지 말자고 했었다. 대체 마을을 구경한다는게 어떤 의미인가. 이들의 삶에 대해 무슨 새삼스런 관심으로 구경을 오는가 등등...
하지만 마을이 자꾸 끌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함께라는 그 느낌이 그리울 때 뭔가 마음이 차가워질 때 이 곳이 많이 생각나기에 판단을 보류하고 이 곳에 간다. 그리고 이곳에 온다.
행간이 참으로 뚜렷한 텍스트, 그래서 더욱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재미남이 이 감천마을만의 묘미 일 것이다.
저 속에 들어가서 골목골목 누벼보면 나 스스로도 그 일부의 텍스트가 되기에 더욱 신비스러운 공간이니까...

그리고 맨 위 사진 속의 중앙부근의 노란집은 이 마을의 순환주택용도로 깨끗하게 고쳐진 집이다.
즉 어떤 집을 수리하는 동안 그 집의 식구들이 머물수 있는 주거라고 하는데 이 집 찾는것도 나름 재미있다.
어떻게 해야 저 집까지 찾아갈 수 있을지...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