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_한한 책을 보다



1988이라는 소설을 알게 된 건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작년엔가 중국에서 오신 북디자이너이신 류 샤오상 선생과 워크샵을 하고 난 후 책에 관해 질문하다가
중국 소설중에 추천할만한 것이 있을까요? 라고 물어봤더니 바로 1988이라는 대답을 돌려 주셨다.
물론 그 때 다른 참가자들은 내 질문이 좀 이상하다고 갸우뚱거렸지만...(추천하신들 번역안된거면 어쩔거냐라는 투로. )
어쨌건 나는 1988이라는 그 당시 제목이 강렬했고 중국소설이라는 것이 위화,루쉰 정도를 빼면 너무나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꼼꼼하게 기억해 두었다.
그리고는 반년정도 지나 책을 구입했고 또 반년이 흐른 뒤에 책을 읽게 되었다.
1988이라는 제목에서 나의 1988년을 기억하면서,,,

책을 펴기전까지는 뭔가 격동의 중국사에서 희생당한 개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일거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물론 그 격동의 시기는 1988년일 것이고...
그러나,
조금은 달랐다. 그저 개인적인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결코 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그 개인인지라 아주 연하게
그 시대적 배경을 뿌옇게 덧붙여 놓은 정도 였다. 그걸 간과한다면 그저 로드무비 형식의 주절주절 고백해 놓은 소설쯤이다.
살아가면서 전혀 만날일 없는 남녀가 만나서 차를타고 그 어딘가를 간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스슬의 이야기를 한다.
딱히 대화랄 것도 없는 고백들이다. 결론이 다소 진부하고 허무했지만 읽는 동안은 빠져들만한 대사들이 곳곳에서 독자로 하여금
긴 여정을 견디게 하는 요소로 빛을 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는 원동력은 아마 계속 달린다는 그 느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침묵이라는 게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 나나가 이야기하고 나와 나나가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안정감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이야기한다. 시작을 이야기하고 끝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번 살아봐요.인생은 드라마와 같아서 아주 엉성하고 논리도 없어요. 비열하고 지루하기만 하죠.
그렇다고 손을 놓을수도 없어요."
"우리는 스스로 길을 그려나갈 수 없어요. 누가 그려놓은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기만 할 뿐이죠."
"나나, 사실 자신을 깨끗하게 씻는 건 쉬워. 매번 내가 한 일이 불만족스러우면 나는 철저히 장소를 바꿨지. 그곳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거든. 당신도 그러면 돼."

화려하고 현란한 문장보다는 간결하고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날선 느낌의 문장들이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글이다.

1988년에 출시된 스테이션 왜건을 타고 달리는 이 글의 무대는 전혀 상상이 되지않았지만 1988년 대한민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저 호돌이 인형을 놀이동산에서 사온 기억,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기억, 주판을 처음 배웠던 기억, 소방차와 박남정의 기억, 그런그런 기억들이 아득하게 겹쳐지는 시간이었다. 그 때와 지금은 정말로 완전히 달라져있긴 하다. 그러니까 완전히
새로운 대상으로서 그 시간들을 생산,추억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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