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신 이웃 영화를 보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건들을 보면서 예전에 본 영화가 생각났다.
물론 그 영화를 보게 된 르꼬르뷔제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주택이 등장하기 때문이었지만
보고 나서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미 영화라 제법 색다른 느낌이 있는 건 확실했다.

말 그대로 성가신 이웃이란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웃집에 오지랖 넓은 험상궃은 남자가 이사를 오게 되고
자신의 창을 주장하며 벽을 뚫으면서 서로간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생기면서 벌어지는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뭔가 그 지극히 가능한 이야기를 참 디테일한 심리로써 풀어낸다는게 영화로써 가능한 이유겠지만 말이다.
이웃집 남자는 뭔가 비밀스런 일을 하는 듯한 일종의 킬러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의 이웃에는 상당히 호의적이다.
반면 이 남자와 갈등하는 이웃의 남자는 허풍세고 속물적이고 그러면서 돈은 제법 버는 좀 찌질한 인간이다.
내 집이 훤히 들여다 보여진다는것이 물론 싫지만 덮어놓고 이 남자는 이웃의 킬러스런 남자에게 고압적으로 군다.
킬러스러운 남자는 속물의 기준에서는 한단계 낮은 부류의 인간이니까...어쨌든
살살 신경건드는 그 불편한 무엇때문에 속물남자의 생활은 점차 균형을 잃어간다. 벽 부수는 소리, 그리고 자신이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벽을 부수는 그 행위에서 엄청난 거슬림을 느끼면서 딱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덕에 남자는 서서히 무너져가는 듯하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  속물남자에게 동조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뜨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실은 그랬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웃의 오지랖은 너무나 성가시고 게다가 말도 안되게 서로의 집을 바라보게 된다는 건
더더욱 괴로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킬러스러운 남자의 따뜻한 마음이랄까 위트 역시, 내가 원치 않는 자극을 계속 나에게 가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 폭력이 다른 것이 아니구나... 라면서 분개한 것도 사실이다.
그냥 날 좀 내버려두란 말이오! 좀머씨의 절규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원치않는 자극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수 있을까?...
그걸 견뎌낼 만큼의 여유라는 것이 정말 우리에게 있을까?....
그게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모든것을 놓아버리고 세상에서 붕 떠오르는 기분이 아닐까?...모든것의 감각이 사라지면서
비현실적인 시공으로 들어가서 나도 모르는 내가 그 무엇을 저질러 버리는...
묻지마 사건들이 가슴아픈건 그래서 일 것이다. 원치 않는 자극으로 멍들고 상처받은 상태에서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면 
어느순간 그 모든 감각이 무뎌지는. 그러면서 그 순간은 내가 아닌 또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겠지.

삭막한 세상에 참으로 따뜻하고 평온한 순간을 기대하면서도 그러한 기회들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쫓기고 쫓기면서
살아가는 건 우리들의 비극일 수 밖에 없겠지만 사실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잘 모르겠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